
금강변 석장리 유적은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처음으로 증명한 곳입니다. 1964년 발굴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반도에는 구석기가 없다'는 것이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인식이었습니다. 강가에서 주먹도끼를 만들던 수만 년 전 사람들의 흔적이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게 했습니다.
핵심 장소: 석장리박물관
나에게 묻는 질문 —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뒤집힌 경험이 있나요?
고구려에 한성을 잃은 백제는 475년 웅진(공주)으로 내려와 공산성에서 재기를 도모했고, 무령왕 때 다시 강국으로 일어섰습니다. 1971년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에서는 4,6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와 백제의 국제적 감각을 증명했습니다. 사비(부여)의 부소산성과 낙화암에는 660년 백제 최후의 날, 삼천궁녀 전설(조선 후기 문학에서 굳어진 표현)로 남은 슬픔이 흐릅니다.
핵심 장소: 공산성, 무령왕릉,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에게 묻는 질문 —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본 적 있나요? 나의 '웅진 천도'는 언제였나요?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열일곱 살 유관순은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부모를 현장에서 잃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서도 그는 만세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천안 독립기념관의 겨레의 탑 아래 서면, 한 소녀의 용기가 얼마나 큰 역사가 되는지 알게 됩니다.
핵심 장소: 독립기념관, 유관순 열사 유적, 아우내장터
나에게 묻는 질문 — 열일곱의 나는 무엇을 위해 목소리를 냈나요? 지금의 나는요?
백제가 웅진과 사비를 오가며 재기를 도모하던 이 무렵, 비잔틴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아야 소피아를 짓고 있었고(537년) 중국은 수나라가 남북조를 통일하며 대륙을 하나로 묶었습니다(589년).
석장리박물관 (구석기의 아침) → 공산성 (백제의 산성) → 무령왕릉 (왕의 방) → 독립기념관 (겨레의 함성)
Q1. 1971년 발견된 백제 왕의 무덤은?
정답: 무령왕릉 — 무령왕릉은 묘지석으로 주인이 확인된 유일한 삼국시대 왕릉입니다.
Q2. 유관순이 만세운동을 이끈 장소는?
정답: 아우내 장터 —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Q3. 무령왕릉 지석(매지권)에는 '돈 일만 문으로 토지신에게 땅을 사서 무덤 자리로 삼는다'는 취지가 적혀 있다. 이 기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정답: 이 기록은 사후 세계의 땅을 사들이는 도교적 매지권이다 — 매지권은 저승의 토지신에게 값을 치르고 무덤 자리를 산다는 형식을 갖춘 문서로, 백제 지배층의 도교적 내세관을 보여줍니다. 생전 하사 문서나 세금 대장, 봉토 문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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