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톤헨지의 거석들은 최대 2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일부는 무게가 25톤이 넘습니다. 하지의 일출이 정확히 중심축에 맞춰지도록 설계되어 천문 관측소이자 제의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5천 년이 지나도록 누가, 어떻게, 왜 세웠는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이 돌들의 침묵이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핵심 장소: 스톤헨지, 에이브버리 스톤서클
스톤헨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더링턴 월스는 지름 약 500미터에 이르는 영국 최대급 신석기 헨지로, 스톤헨지를 세운 사람들이 머물던 대규모 취락이었다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바로 남쪽 우드헨지에서는 여섯 겹의 타원으로 늘어선 나무 기둥 자리가 확인되어, 지금은 콘크리트 표석이 그 위치를 대신 표시하고 있습니다. 2002년 인근 에임즈베리에서 발굴된 이른바 '에임즈베리 궁수'는 기원전 2300년 무렵의 무덤으로, 치아의 산소동위원소 분석 결과 알프스 일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인물로 추정됩니다. 구리 칼과 금 장신구까지 함께 묻힌 이 무덤의 유물은 솔즈베리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핵심 장소: 더링턴 월스, 우드헨지, 솔즈베리 박물관
1666년 존 오브리는 스톤헨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기록하면서 땅이 꺼진 구덩이들을 남겼는데, 훗날 이 자리는 그의 이름을 딴 '오브리 홀'로 불리게 됩니다. 1740년 무렵 윌리엄 스터클리는 중심축이 하지 일출 방향을 향한다고 정리했고, 드루이드가 세웠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대중적 이미지에는 오래 영향을 남겼습니다. 1915년 경매에서 6,600파운드에 스톤헨지를 낙찰받은 세실 츄브는 1918년 이를 국가에 기증했고, 1901년부터 1960년대까지 기울거나 쓰러진 돌을 다시 세우는 공사가 여러 차례 이어졌습니다. 1986년 에이브버리 일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2013년에는 새 방문자센터가 문을 열면서 유적 옆을 지나던 A344 도로가 폐쇄되어 잔디로 덮였습니다.
핵심 장소: 스톤헨지 방문자센터, 스톤헨지 애비뉴, 윌트셔 박물관(데비지스)
한반도에도 같은 거석문화가 꽃피었습니다.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며, 한반도에는 세계 고인돌의 약 40%인 4만여 기가 모여 있습니다.
Q1. 2002년 스톤헨지 인근에서 발굴된 '에임즈베리 궁수'는 어느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정될까요?
정답: 알프스 일대 중부 유럽 — 치아 법랑질의 산소동위원소 분석 결과 알프스 지역 출신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2300년 무렵 먼 거리를 이동해 온 인물로 해석됩니다.
Q2. 1915년 경매에서 스톤헨지를 사들인 뒤 1918년 국가에 기증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세실 츄브 — 지역 유지였던 세실 츄브가 6,600파운드에 낙찰받아 3년 뒤 국가에 기증했고, 그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Q3. 스톤헨지 관련 고고학 기술에는 '거대한 돌들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채석장에서 옮겨져 원형으로 세워졌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 자료로 알 수 있는 것은?
정답: 이 기록은 대규모 인력을 조직할 수 있는 공동체의 능력을 보여준다 — 먼 곳에서 거대한 돌을 옮겨와 원형으로 세웠다는 사실은 신석기 공동체가 대규모 인력과 자원을 조직할 능력을 갖추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 요새, 자연 형성, 시장 건물이라는 설명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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