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안의 도읍 역사는 병마용보다 800여 년 앞선 시대에 시작됩니다. 기원전 11세기 무렵 주나라 문왕과 무왕은 펑허(灃河)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풍(豊), 동쪽에 호(鎬)를 세웠고, 이 쌍둥이 도읍은 약 300년간 왕조의 중심 노릇을 했습니다. 발굴로 확인된 두 유적의 범위는 17제곱킬로미터에 이르고, 1950년대에는 수레와 말을 통째로 묻은 차마갱이 드러나 당시 지배층의 장례 풍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기원전 771년 견융의 침입으로 도읍이 무너지자 왕실은 이듬해 동쪽 뤄이로 옮겨 갔습니다.
핵심 장소: 풍호 유적(창안구 마왕진), 서주 차마갱, 산시성 역사박물관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가 발견한 병마용은 진시황의 무덤을 지키는 8천 명의 흙 병사였습니다. 놀랍게도 병사들의 얼굴은 하나하나 다 다르게 빚어졌습니다. 천 년 뒤 같은 자리의 장안(시안)은 인구 100만의 당나라 수도이자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세계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핵심 장소: 병마용갱, 진시황릉, 대안탑
당이 무너진 뒤 수도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명나라 때 이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얻습니다. 홍무제는 1370년 수·당 황성의 옛 터를 발판 삼아 성벽을 쌓기 시작해 8년 만에 마무리했는데, 둘레 약 13.7~14킬로미터에 높이 12미터인 이 성벽은 지금도 걸어서 한 바퀴를 돌 수 있습니다. 성안 한복판에는 1384년에 세운 종루가 있는데, 도시가 동쪽으로 커지자 1582년 통째로 헐어 지금 자리에 다시 세웠다고 전합니다. 서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명대에 지금의 규모를 갖춘 대청진사가 있어, 기와지붕과 아랍어 편액이 나란히 놓인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핵심 장소: 시안 성벽(영녕문), 종루와 고루, 화각항 대청진사
통일신라의 전성기로, 경주는 장안을 모델로 한 국제도시였습니다. 신라의 승려 혜초는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까지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고, 장보고는 해상 실크로드를 장악했습니다.
Q1. 시안 일대가 왕조의 도읍으로 처음 기능하던 서주 시기, 펑허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던 쌍둥이 도읍의 이름은?
정답: 풍(豊)과 호(鎬) — 문왕이 강 서쪽에 풍, 무왕이 동쪽에 호를 세웠고 둘을 합쳐 풍호(豊鎬)라 부릅니다. 기원전 771년 견융의 침입으로 무너지고 이듬해 도읍이 동쪽으로 옮겨졌습니다.
Q2. 오늘날 시안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성벽은 언제 쌓인 것일까요?
정답: 명 홍무제 때 — 1370년 홍무제 때 수·당 황성 터를 이용해 착공해 8년 만에 완성했으며, 둘레는 약 13.7~14킬로미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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